
Dreaming Valentine
맑고 푸른 하늘 아래, 화사한 분홍색 풍선이 바람을 따라 흔들렸다. 그 모습을 가만히 올려다보던 네네는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발렌타인을 맞이하여 준비한 특별 무대를 앞두고도, 네네의 마음속에는 무대와는 전혀 관련 없는 고민이 가득 차 있었던 탓이다. 아니, 조금은 관련이 있나? 아무튼. 그도 그럴 것이 그의 고민이란 것은……
“어이, 네네! 풍선 달기는 이제 마무리된 건가!”
저 쓸데없이 목소리만 큰 단장, 텐마 츠카사와 관련된 것이었으니까. 그래서 네네는 대답 대신 한숨이나 한 번 더 쉬었다. 이번에는 크고도 길게. 하아아아아아……. 덕분에 츠카사만 길길이 날뛰었다. 사람이 말하는데 한숨을 쉬는 거냐, 지금! 그러거나 말거나, 네네는 심란한 마음을 추스르고자 무대에서 사용될 다른 소품이나 점검하러 걸음을 옮겼다. 네네! 지금 날 무시하는 거냐! 하는 츠카사의 우렁찬 목소리는 못 들은체하고.
그렇게 무대 뒤편의 준비 공간으로 들어선 네네는, 잔뜩 쌓인 소품의 산을 보다가 구석으로 들어가 머리를 박기나 했다. ……지금 나, 대체 뭐하는 거야? 가라앉은 얼굴로 그가 얇은 겉옷 안쪽의 주머니를 뒤적이자면, 거기에서 손에 잡혀 나온 건 놀랍게도 초콜릿이었다. 그것도 예쁜 노란색 포장지를 써서 제법 정성스럽게 포장된! 사실 이쯤 되면 그 주인이 누구인지 밝힐 필요도 없겠다. 아, 그냥 조금 전에 줘버릴걸. 그러고 보니 너도 이거 받아, 하면서 주고 들어오면 됐던 건데. 왜 그냥 들어와버린 거지……. 콩, 네네가 구석에 머리를 한 번 더 박았다. 바보는 쟤인데, 왜 내가 이렇게 바보같이 굴고 있어야 하는 거야. 지난 발렌타인 때에는, 그래, 에무하고 준비했던 거라고 해도, 그냥 잘만 건네줬었잖아? 1년 사이에 갑자기 뭐가 문제인 거야. 하고 스스로에게 물은들 답은 뻔했다. 비극적이게도, 쿠사나기 네네가, 저 바보를, 그러니까 텐마 츠카사를, 그사이에 좋……
아아악! 네네는 소리 없는 비명이나 지르며 눈을 질끈 감았다. 몇 번을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일이야. 내가 왜? 그러나 부정할 수는 없었다. 심지어 루이마저도 눈치챈 지 오래인 듯 보였으니까. 아침에 잘 포장된 초콜릿을 건네주었더니, 고마워, 네네, 하고 우후후, 웃던 그 얼굴이 눈에 선했다. 단순히 초콜릿을 받아서 기뻤다면 ‘후후’였을 텐데, 무척 재미있는 일을 앞둔 것처럼 ‘우후후’라니. 그러고선 그 직후에 꺼낸 말이 “츠카사 군도 기대하고 있겠네, 발렌타인.” 이라니. 마음을 정리하지는 못했을지언정 티는 내지 않고 지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그래, 혹시, 정말로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혹시 츠카사도 눈치채는 거 아냐? 생각이 드는 바람에…… ……원래라면 진작 건네줬을 츠카사의 초콜릿만 수중에 덩그러니 남아버리고 만 것이다. 에무에게도 이미 발렌타인 초콜릿을 주었는데, 정작 같은 학교인 츠카사만 아직이라니. 이러다가 초콜릿을 못 전해준 채로 발렌타인 데이가 지나면……
……지나면…… 뭐 어쩔 건데. 추욱, 네네의 어깨가 힘없이 아래로 처졌다. 솔직히, 이 생각은 이렇게 바꾸는 쪽이 더 정확했다. 좋아하면 뭐 어쩔 건데? 설마 저 츠카사와 그, 여, 연인 관계라도…… 되고 싶은 건가? 그럴 리가 없잖아! 아니, 그렇게 엄청 싫은 건 아니지만. 그렇게까지 되고 싶은 것도 아니니까. 손을 잡고 하교한다거나, 단둘이 데이트를 한다든가. 그런 건 생각만 해도 불편한 쪽에 가까웠더랬다. 그러니까 굳이 따지자면, 내가 바라는 건…….
힘없이 늘어진 네네의 어깨가, 누군가의 손에 붙잡혀 돌려 세워진 건 그때였다. “네네!” 놀라서 크게 눈을 뜬 네네의 시야에 한가득 츠카사의 얼굴이 들어왔다. 뭐야? 저렇게나 당황한 얼굴을 하고서는. 아니, 잠깐. 저녀석 방금전에 내 이름을……. 생각을 이어갈 틈도 없이 츠카사가 물었다. “괜찮은가?” 아니, 뭐가? 나는 그냥……. “구석에서 혼자 뭐하는 거냐! 얼굴도 빨갛다만! 열이라도 있는 건가?” 츠카사의 손은 네네의 것보다 조금 따뜻한 정도였다. 어느 계절이건 간에. 그럼에도 그 손등이 제 이마에 와 닿았을 때, 네네는 어쩐지 그에 데이기라도 한 것처럼 파드득, 떨며 몸을 움츠리는 수밖에는 없었다. 팽글팽글, 머릿속이 돌아가는 게 어쩐지 정말 열이 있는 것도 같고. 아니, 무슨 소리야. 정신 좀 차려! 이건 그냥……!
“……아무것도 아니야. 긴장해서 그래.” 널 좋아해서 그래. 네네는 입을 꾹, 다문 채 츠카사의 시선을 피했다. 이마에 댄 손을 슬그머니 밀어냈음은 물론이고. 그렇다고 해서 츠카사의 염려 섞인 눈동자가 멀어지는 건 아니었다마는. “그런가. 그럼 소품 정리는 내게 맡기고…… 응?” 부스럭, 소리가 나더라니 츠카사가 바닥에서 무언가를 주워들었다. “그런데, 네네. 이거 네 건가?” 하는 소리에 그제야 네네가 다시 츠카사에게로 시선을 옮기니…… 말도 안 돼! 붉게 물들었던 네네의 얼굴은 이제 새파랗게 질려버렸다. 츠카사의 손에 들린 건 문제의 그 초콜릿이었으니까. 놀라서 떨어트린 거야? 바보 같아, 하필 츠카사 앞에서……. 아니, 츠카사 거긴 한데. 생각이 그에 다다르니 답은 고민할 틈도 없이 새어나가 버렸다. 이성이 마비된 가운데 배우로서의 본능이 앞선, 일종의 애드리브에 가까웠다: “아, 그거…….” 왠지 지나치게 퉁명스러운 투기는 했다마는. “츠카사 주려던 거니까, 가져.”
……결국 줘버렸다. 아, 나 방금 너무 바보같이 말하지 않았나? 내가 츠카사도 아니고……. 네네는 익숙하게도 약한 자괴감을 느끼고 만다. 됐어, 줬으면 됐지. 뭐라고 답할지도 뻔했다. 저 텐마 츠카사라면 분명 또, ‘뭐? 네네가 나한테 초콜릿을? 너 정말 네네 맞나? 루이가 변장해서 연출을 시험하고 있는 건 아니고?’ 이런 소리나 할 터다. 확실히 힐끔, 곁눈질로 살핀 츠카사의 얼굴에는 의아한 기색이 선명했다. 뭐, 이거 내 거라고? 묻는 듯한 맑은 눈동자란! 그러나 그 직후의 답은, 네네로서는 제법 의외의 것이었더랬다: “아, 그런가. 발렌타인이니까!” 고맙다, 네네! 하며 활짝 웃는 츠카사의 얼굴까지도.
네네는 잠시 그로부터 시선을 떼지 못했다. 잔잔히 밀려온 감정의 파도가 발목을 간질였던 까닭이다. 그 파도는 결코 처음 뮤지컬을 보았을 때에 비할 바는 되지 못하겠으나, 어쩐지 비슷한 종류의 것으로 느껴져서. 네네는 그에 작게 아, 소리를 내고 만다. 깨달음의 신호였다. 나, 저 웃는 얼굴을, 텐마 츠카사를 좋아해서…….
그냥,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함께 무대에 서고 싶어. 웃음을 나누는 배우가 되고 싶었어, 저 바보랑 같이. 그런 깨달음.
발렌타인의 원더 스테이지는 분홍색 일색. 크기가 일정하지 않은 하트 모양 풍선이 바람 따라 흔들리는 오후. 작년만 해도, 쿠사나기 네네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조종대를 쥔 채 무대에 선 츠카사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이제는 성큼 가까워진 거리가 새삼스럽게도 간지러웠는지도 모른다. 다가올 봄날의 꽃비처럼, 무대를 앞둔 어린아이의 기대감처럼.
“좋아, 관객들에게도 최고의 발렌타인을 선물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고! 준비는 됐나, 네네!” 그러나 부쩍 가까워진 거리에서 곧장 들려오는 츠카사의 목소리는 지나치게 시끄러워서, 네네는 어쩐지 소리 내어 웃어버리기나 했다. “뭐야, 네네! 이 타이밍에 왜 웃는 거냐! 사람이 단장으로서 기합을!” 항의하는 목소리도 가볍게 무시한 채로. 그래, 나도 정말, 기대되기 시작했어. 너를, 그리고 원더랜즈 쇼타임을 만난 뒤로는 항상 그랬듯이. 생각했더라는 건 그에게 말해주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그냥, 놀림 받은 듯한 기분에 분하단 얼굴을 하고 있는 그를 보는 게 제법 즐거우니까.



